본문 바로가기

글쟁이

18-1 군인정신 리더십과정 병사반 당선작 : 천안함 견학 소감문

 

실제 천안함

2010년 3월 26일, 당시의 나는 새 학기를 맞아 친해진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빴던 중학생이었다. 그날 밤 21시경, 백령도 인근 해안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천안함’이라는 군함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하게 되었다. 그 후 몇 달 동안 천안함 침몰의 원인 규명, 인양 문제 등등의 소식이 귓가에 많이 들려왔다. 솔직히 말하면 그땐 천안함 사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고, 나와는 거리가 다소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천안함이라는 배에서 열심히 나라를 지키던 군인아저씨들이 북한의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인해 많이 돌아가셔서 안타깝다는 것, 그뿐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2017년 4월의 나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진주 교육사령부의 공군훈련소에 도착해있었다. 힘들었지만 보람찬 훈련을 마치고 난 후 특기학교를 거쳐 자대를 배정받고, 이병, 일병 시기를 거쳐 2018년 2월의 나는 상병이 되었다. 공군에서는 상병들을 대상으로 정신전력 강화와 올바른 국가관 함양을 위한 ‘상병 진급 캠프’를 시행하고 있다. 나는 4월에 열리는 상병 진급 캠프 대상자였으며, 상병 진급 캠프가 굉장히 유익했던 시간이라는 선임들의 말을 듣고 난 후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상병 진급 캠프 안내문을 읽어보던 중, 2일차 일정의 ‘해군2함대사령부 견학’이 눈에 띄었다. 바로 이 해군2함대사령부에 천안함이 사건 당시의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중학생 때 시청했던 TV뉴스 속 인양된 천안함의 모습은 두 동강이 난 참혹한 모습을 가리기 위해 가운데 절단면이 초록색 그물망으로 뒤덮여있는 모습이었는데, 견학을 가서 그물망이 벗겨진 천안함을 실제로 마주할거라는 사실에 살짝 긴장되었다.

 

4월 초라 완연한 봄기운이 맴돌 줄 알았으나 꽃샘추위의 매서운 입김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꽤나 쌀쌀한 날씨 속에서 버스를 타고 첫 번째 안보 견학지인 현충원을 방문한 후, 평택에 위치한 해군2함대사령부로 향하였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잠시 정차한 다음 오늘 있을 견학의 해설을 담당한 해군 전우님이 탑승하셨다. 넓디넓은 해군2함대사령부의 여러 건물들과 바다에 정박해있는 멋있는 군함들을 흥미롭게 구경하던 와중에 천안함 앞에 도착하였다는 말을 듣고 버스에서 하차하였다.

 

찢어진 천안함 단면

처참하다. 두 동강난 천안함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방금 지나오면서 보았던 군함들은 너무나 튼튼해 보이고 적의 어떤 공격에도 굴하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한 모습이었는데, 이렇게 늠름한 군함이 이토록 처참히 파괴될 줄이야……. 공격을 받은 함체의 절단면은 훨씬 참혹했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하게 찢긴 함체 외부, 처참하게 부수어진 함실 내부의 철판과 전자장치들, 비참하게 끊어져 고개가 축 꺾여버린 무수한 전선 다발들……. 차디찬 바다 속에서 눈을 감았던 천안함 용사들의 고통스러움이 그것들로부터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저 안타깝고 슬픈 마음뿐이었다. 꽃샘추위의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목소리를 담고 우리에게 불어오는 것 같아서 더욱 쌀쌀했고,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절단면 아래에서 우리는 천안함의 구조와 사건의 경과와 원인에 대한 해군 전우님의 설명을 간단히 듣고, 그 누구보다 용감하게 나라를 지키다가 하늘로 떠나가신 호국 영령들의 평안을 기리는 뜻으로 묵념을 한 후 서해수호기념관으로 입장하였다.

 

서해수호기념관에는 용사들의 유품들이 가지런히 놓아진 전시장이 있었다. 한때 그분과 한 몸이었던 군복과 모자, 수첩, 시계, 사진 등등의 물건들을 보면서 그분들의 살아생전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는 해군 전우님이 천안함 용사 중 몇 분을 간략히 소개시켜드렸는데, 기억에 남는 용사 한 명이 있었다. 바로 장철희 일병으로, 사건 당시 만 19세라는 어린나이였고, 천안함에 배치된 지 겨우 보름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철도에 관하여 굉장한 관심과 열정을 갖고 제대 후 어엿한 철도기관사가 되기를 희망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만 19세,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던 나이이다. 처음으로 진정한 어른이 된 기분을 느끼면서 그 어느 때보다, 그 누구보다 신나게 삶을 즐겼던 때이자, 한편으로는 내가 꿈꾸고 열망하는 장래의 멋있는 내 모습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때이기도 하였다. 장철희 일병도 자신의 꿈을 펼칠 날을 하루하루 기다리며 조국 수호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던 중이었을 텐데, 너무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고야 말았다. 미래에 멋진 사람이 되겠다는 열정을 가진 것, 비슷한 나이에 나라를 지키러 온 것 등의 공통점을 장철희 일병과 현재의 나에게서 찾아보며 그를 공감할 수 있었다. 때문에 장철희 일병의 일화는 나의 머리와 가슴속에 또렷이 남아서 그의 몫까지 함께 꿈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의지를 품게 만들었다.

 

2층에서 바라본 천안함

전시장을 모두 둘러보고 난 후에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북한 어뢰 잔해의 원형인 CHT-02D의 모형 앞에서 해군 전우님이 천안함 사건의 원인에 대해 앞에서보다 더욱 자세한 해설을 해주셨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건 직후에 해군은 빠른 속도로 함체 탐색을 하고 생존자 구출 작전을 펼쳤으며, 이후 함체 인양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사건의 원인 규명을 위해 민·군 합동조사단을 편성하여 조사에 착수했고, 조사 끝에 정부는 ”천안함은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수중폭발에 의해 침몰하였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에 대해 명백한 증거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첫 번째는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인해 나타난 선저 부분의 수압 및 버블 흔적이고, 두 번째는 사건 근처 바다에서 수거한 어뢰 추정 물체의 잔해에서 북한에서만 쓰이는 어뢰의 한글 표기법을 발견한 것이다. 이 외에도 엄밀히 검증된 여러 가지 증거들이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해 침몰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천안함 침몰이 우리가 조작한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을 펼치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 한편 우리 사회에도 객관적·과학적으로 입증된 조사 결과를 불신하며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말도 안되는 괴담이나 유언비어를 유포하여 내부 혼란과 분열을 일으키는 무리들이 있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단 하나이다.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소행임이 분명하고 국제 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의도적 도발행위였다. 이는 틀림없은 사실이며 우리의 가슴 속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천안함 추모비 앞에서 묵념

지난 2018년 4월 27일, 남북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MDL)에서 만나 회담을 갖고, ‘판문점 선언’을 통해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고 한반도 평화체제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렇지만 긴장을 늦추어선 안 된다. 북한은 천안함을 공격하여 선배 전우들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가는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으며, 이러한 북한의 만행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은 언제라도 현재의 온화한 태도를 바꾸어 또다시 무모한 도발을 할 수 있으며, 만약 그런 경우가 발생하면 우리는 더욱더 철저하고 강력하게 복수하여 먼저 떠나간 천안함 용사들의 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번 해군2함대사령부의 천안함과 서해수호기념관 견학을 통해 많은 생각과 느낌이 들었다. 처참히 두 동강 난 천안함의 모습은 아직도 충격적이고, 용사들의 유품은 여전히 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했으며, 장철희 일병의 이야기는 그의 못 다 이룬 꿈까지 나의 꿈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심어주었고, 북한 어뢰 모형 앞에서 들었던 해군 전우님의 해설은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하였다. 견학을 다녀온 뒤, 지금의 내가 순직하신 천안함 용사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현재 나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면서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우리나라 국방을 튼튼히 하는데 보탬이 되고, 제 2의 천안함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국제 평화 유지에도 이바지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천안함 용사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임과 동시에 우리나라와 국제 사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하고 오늘도 나는 내게 주어진 임무를 열심히 수행한다.


벌써 1년도 더 전이다. 당시 군 복무중인 부대의 인트라넷 홈페이지에서 현역 병사들을 대상으로 '군인정신 리더십과정 병사반'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군인 정신을 느낄 수 있었던 사건들이 몇 가지 있다. 6.25 전쟁이나 제 2연평해전, 천안함 사건등이 그것이다. 그것들을 주제로 한 도서나 영화 감상문을 쓰거나, 관련 장소 견학 소감문을 작성하여 제출하면 심사를 통해 30명을 뽑아 4박 5일동안 (5월 28일~6월 1일) 전쟁기념관, 해군2함대사령부, 현충원, 도라전망대 등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관련된 곳들을 견학하고 2박 3일동안의 휴가 (6월 1일~3일) 를 준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답답한 부대를 벗어나 일주일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장소들을 돌아다닌 후 3일 동안은 집에서 쉴 수 있다는 말에 당장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상병캠프 때 견학한 천안함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건에 대한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찾기 위해 인터넷과 인트라넷의 각종 자료들을 수없이 참고하고, 문학적 표현을 적절히 사용해 글의 완성도를 높이려했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군인으로서의 수호 의지와 북한을 향한 분노가 글에서 잘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맞춤법이 틀린 부분은 없었는지, 문장이 어색하게 이어지지는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퇴고와 수정을 거듭 반복하였다. 7일간의 외출이라는 보상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행히도 나의 노력이 통하였는지 총 지원 인원 270명 가량 중 30명에 들게 되어, 즉 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군인정신 리더십과정 병사반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견학은 굉장히 의미있었다. 평소라면 굳이 찾아가지 않을, 우리나라의 역사가 담긴 뜻깊은 장소들을 대절 버스와 질좋은 해설과 함께 다닐 수 있어서 맘에 들었다. 숙소 내의 저녁밥은 좀 별로였고, 일정이 너무 빡세서 하루 견학을 다 마치고 나면 꽤 힘들었던 것은 단점이다.

 

이 글을 쓰면서 글쓰기는 굉장한 정신노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끝에 찾아온 결과는 정말 달콤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글을 쓸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