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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

우주와 그 안의 나를 찾아서, 그리고 우주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대하여 - <날마다 천체물리>를 읽고 -

 

날마다 천체 물리 표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쾌청한 계룡의 어느 가을 밤, 기상관측을 위해 사무실 밖으로 나선다. 내 머리 위에는 이제 막 남쪽 하늘의 천장을 달리기 시작한 페가수스자리와 페르세우스자리가 보인다. 동쪽을 바라보면 마차부자리와 황소자리, 그리고 오리온자리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이렇게 밤하늘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중학생 때 경험했던,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우주의 풍경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그저 황홀했다. 9년 전 가족들과 소백산 자락으로 여행을 갔을 때 마주했던 그 한여름의 밤하늘과 은하수가. 금방이라도 내 눈동자 속으로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았던 보석 같은 별들의 향연이.

 

그날 보았던 정경에 압도된 나는 그 뒤로 밤하늘과 우주, 천체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들이나 인터넷 사이트들을 끊임없이 탐독했다. 우주를 향한 나의 열정은 자연스럽게 학문적 갈망으로 이어졌다. 고등학생이 되어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비밀을 풀 천체물리학자가 되겠다고 굳게 결심했고, 이후 천문학을 전공으로 택해 대학에 진학했다. 군 복무를 하는 지금까지도 그 꿈을 놓지 않고 꾸준히 천문학 관련 도서들을 찾아 읽고 있다. 그러던 중, 부대 도서관에서 <날마다 천체물리>라는 책을 만났다. ‘천체물리’라는 매혹적인(?) 단어가 들어간 제목에 한 번 이끌리고, 은하수의 모습이 아름답게 담긴 표지에 두 번 이끌려 당장 책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교양 수준의 지식을 재밌고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주제가 많이 소개되어있지만,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봤던, 또는 한 번 쯤 생각해볼만한 근본적 질문에 초점을 맞춰서 글을 쓰려고 한다.

 

지금 이 글을 써내려가는 ‘나’는 공군기상단 안에, 계룡시 안에, 한반도 안에, 지구 안에, 태양계 안에, 결국 ‘우주’라는 공간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이다. 그럼 이 ‘우주’라는 공간과 그 속에 실재하는 ‘나’란 무엇이며,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위에서도 말했듯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본, 또는 떠올려볼만한 가벼운 질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존재의 의미와 근원을 묻는 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우리는 그에 대한 해답을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40억 년 전에, 지금의 세상을 이루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들이 우리 머리카락 끄트머리의 1조분의 1보다 작은 부피 속에 내재되어 있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조그만 점 안에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었으니 그 안은 엄청나게 높은 온도와 압력을 가진 용광로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그 점은 매우 빠른 속도로 폭발해 팽창할 수밖에 없었고, 우린 이 현상을 ‘빅뱅’이라고 부른다.

 

우주의 나이가 10^-35초에서 10^-6초를 지나가고 있다. 우주의 탄생 때부터 한 덩어리로 존재하던 기본입자들이 이 짧은 시간 동안 쿼크와 전자 등으로 분리되었다. 입자들 중 쿼크들은 서로 결합해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었고, 전자들은 우주공간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우주의 나이가 1초가 되었다. 바로 이때쯤 양성자와 양성자가, 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서로 결합해 원자핵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탄생한 원자핵들은 전자들과 결합하여 90퍼센트는 수소가 되고, 약 10퍼센트는 헬륨이 되었으며, 극소수는 중수소, 삼중수소, 리튬이 되었다. 이후 오랜 세월동안 원자핵들이 전자들과 결합하며 우주에는 수소와 헬륨을 비롯한 여러 물질들이 가득 차게 되었다.

 

우주 시작 후 10억년이 흘러간다. 중력이 주변의 물질들을 끌어당겨 ‘은하’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1,000억 개의 은하가 형성되고, 은하 하나하나는 원소가 첨가된 기체를 뭉쳐서 또다시 1,000억 개의 별을 만든다. 대부분의 별들은 내부 핵융합을 통해 일생동안 생명의 탄생에 필요한 원소들을 합성한다. 그리고 그 별들 중 더욱 큰 질량을 가진 것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 죽음을 맞이하며 폭발할 때 자신이 만들었던 원소들을 사방으로 퍼뜨린다. 그 원소들이 포함된 기체는 새로운 별들을 잉태하고, 그 별들은 다시 폭발해 은하 전체로 결과물들을 흩뿌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렇게 90억년이 흘렀다. 우주 어느 한 구석의 기체 구름에서 드디어 우리의 태양이 태어난다. 그러나 태양이 태어난 곳은 그다지 특별한 장소가 아니다. 우주의 수없이 많은 은하들 중 하나에 불과한 우리은하, 그리고 그 우리은하의 중심도 아닌 나선 팔 한 끝자락 어딘가. 이곳이 바로 우주에선 한없이 평범하지만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한 별, 태양이 탄생한 장소다. 기체 구름은 태양뿐만 아니라 지금의 행성들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원소들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양을 중심으로 여러 원시 행성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후에 ‘지구’라고 불릴 원시 행성 하나가 자리 잡아 점점 그 모습을 갖춰나갔다.

 

화학적으로 다양한 물질들이 녹아든 바닷물 속에서 몇몇 유기성 분자들이 자기 복제가 가능한 생명으로 진화한다. 이 생명들은 복잡한 지구 환경을 오랜 시간 동안 나름대로 견디고 적응하며 다양한 형태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다. 그 와중에 가끔씩 소행성이나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대재앙을 맞이한다. 당시 지구의 주인이던 공룡들이 이 대형사건 때문에 모두 멸종해 우리의 조상 포유류 동물들이 새롭게 지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 중 우리가 유인원이라고 일컫는 포유류 종 하나가 호모 사피엔스 종으로 진화한다. 충분한 지식과 의식을 지니게 된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그들의 고향인 우주를 향해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이봐,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리고 어떻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거야?’

 

이렇게 복잡하고 길지만, 환상적이면서도 경이로운 과정을 통해 지금의 우주가 탄생하고, 그 안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비롯되었다. 이젠 ‘나’가 누구고, 어디서 왔는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몸을 이루는 원자 알갱이들 하나하나의 기원을 우주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시작해서 세월이 다한 거대한 별들이 폭발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온 우주로 흩뿌린 그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별들의 먼지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 스스로를 별들의 후예요, 우주의 후손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우주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특출한 존재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우린 그저 우주의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세월 속에서 지구라는 티끌만한 자리를 찰나의 시간동안 스쳐지나가는, 보잘것없고 평범한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인류는 그러한 사실들을 망각한 채 자만심에 빠져있다. 현실의 인간들은 서로 돕고 살지는 못할망정 자기의 이익만을 좇기 바쁘고, 인종, 종교, 국가, 문화, 민족 등의 문제들 때문에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고 있다고 책의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제 행성 지구를 ‘우주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 문명이 당면한 과제들을 우주적 시각에서 조망한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지구와 인간을 더욱 귀중히 여길 수도 있게 된다.

 

우주적 시각은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지구가 아주 조그마한 공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오직 지구만이 현 인류의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안식처라는 진실 또한 가르쳐준다. 우주적 시각은 우주라는 공간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냉정하고, 외롭고, 위험한 곳이라 알려주며 인류 구성원들로 하여금 서로의 의미를 계속해서 되묻게 한다. 우주적 시각은 인간들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들이 우주라는 하나의 뿌리로부터 나왔다고 말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각종 다름의 문제로 다투거나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전혀 없음을 알게 된다.

 

저자의 말대로 지금의 인류는 서로간의 끊임없는 투쟁을 하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로만 시선을 돌려도 빈부격차, 성 평등 등의 각종 문제들 때문에 소란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북한과의 해묵은 갈등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나는 저자가 말한 ‘우주적 시각’이 우리나라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이 작디작은 땅덩어리에서 아주 잠깐 머물렀다 갈 뿐이기에 그 시간만큼이라도 서로를 도와 빈부격차를 줄여야한다. 남녀는 상대를 향해 으르렁거릴게 아니라 그들 모두가 별들의 후예라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이해해야한다. 북한과 정치적, 민족적 관계를 따지며 대립하기 이전에 그들과 우리 국민들 전부는 다 같은 우주의 후손이란 사실을 인지하며 서로 간의 얼어붙은 감정을 조금씩 녹여나가야 한다.

 

물론 우리 국민들을 비롯한 인류 모두가 지금 바로 우주적 시각을 갖추기란 절대 쉽지 않다. 하루하루를 살기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매일같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색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자기 정당의 표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된 정치인과 물질적 이익만을 좇기 바쁜 사업가에게 천체물리학은 딴 세상일이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힘든 나날들을 버티고 있는 전쟁 속의 난민, 도심 속 쓰레기통을 뒤지며 근근이 살아가는 노숙자. 이들에게 천문학은 그저 사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나부터 우주적 시각을 지니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제부터 날마다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선 저 광활한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나’의 의미를 한 번 되새겨보며 우주적 시각을 기를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된 ‘우주적으로 세상 바라보기’는 내 주변으로 점점 퍼져나가 우리나라 전체로, 아시아 전체로, 온 인류 전체로 퍼져나갈 것이다. 먼 훗날, 그때가 된다면, 마침내 지구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싸우거나 갈등할 필요 없이 모두가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런 평화 말이다.


당시 공군 내에서 독후감 대회를 개최하여 참가하기 위해 쓴 글이다. 아쉽게도 수상은 하지 못하였다. 저자가 말한 우주적 시각으로 우리나라와 북한과의 관계를 바라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쓴 글인데 정작 그 부분은 좀 약하고 어려운 과학적 설명이 더 많은 것 같다. 앞으로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겠다.